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우키시마호 사건 (문단 편집) === 기뢰 충돌로 침몰했다는 시각 === 일본이 주장하는 사건의 원인은 [[미군]]이 부설한 [[기뢰]]에 우키시마마루가 접촉하면서 폭발이 일어났다는 것. 당시 마이즈루만에는 미군이 부설한 기뢰들이 깔려 있었는데 자기기뢰에 대해서는 우키시마마루 자체의 장비로 탐색이 가능했지만 음향기뢰는 [[소해정]]이 음향 발신기로 음향 기뢰의 위치를 파악하는 게 필요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아시아 태평양 전쟁기에 미군이 부설했던 기뢰의 규모는 상당하였기에 종전 후 이 기뢰들의 해제를 위해 일본 육해군이 공식적인 해산에도 소해부대들은 존속하게 되었다. 이들은 [[6.25 전쟁]]에 동원되기도 했으며 소해부대가 훗날 [[해상자위대]]의 모태가 되었다. 그런데 우키시마마루는 마이즈루항으로 들어가라는 상부의 지시를 받기는 했으나 갑작스런 명령 전달 과정에서 혼동이 있어 길을 안내해야 하는 소해정들이 제때 마중을 나오지 않았는데 우키시마마루는 소해정들이 나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마이즈루만으로 그냥 들어갔다가 기뢰가 있는 수역으로 진입하여 음향 기뢰가 엔진음에 반응하여 폭발하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이 기뢰에 대해 일본에서는 "음향기뢰가 아닌 수압식 기뢰일 가능성도 크다"고 말한다. 또한 일본 측에서는 "마이즈루에 입항한 것은 배의 연료가 떨어졌기 때문이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승조원과 탑승자들 대부분을 함선의 데크(갑판)로 유도했기 때문에 오히려 피해가 적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일본이 기뢰 폭발에 의한 사고라고 주장하는 직접적 근거로는 침몰한 우키시마마루의 상태가 상부 구조물이 파괴된 것이 아닌 배 밑바닥 등의 하부 구조물에만 폭발한 흔적이 있다는 점[* 하지만 상식적으로 배를 자침시킬 거라면 당연히 흘수부분을 폭파하니 논할 가치도 없는 주장이다.], 선체 부품이 흩어져 날아가거나 선체에 큰 폭발로 생긴 구멍이 없다는 점, 폭발 이후 해저의 흙이 부상해 해면이 탁해진 점, 사망자들의 사체가 화상을 입었거나 신체가 산산히 흩어지지 않은 점 등을 들고 있다. 또한 일본은 "미군이 이 사건을 수중에 부설한 기뢰에 의한 전과로 기록하고 있는 점도 증거"라고 주장한다. [[일본어 위키백과]]에는 해당 사건에 대해서 [[GHQ]] 측에서 8월 25일 0시 이후로 100톤 이상의 배의 출항을 금지시켜[* 1975년에 나온 재일조선인 처우의 추이와 현상(在日朝鮮人処遇の推移と現状) 53페이지를 출처로 명시하고 있다.] 해당되는 항해 중인 선박을 가장 가까운 항구로 입항할 것을 명령하였고 8월 24일 오후 6시까지 목적지에 도착할 수 없을 것 같은 배는 전부 가까운 항구로 회항하라는 명령을 듣고 위치, 승선자의 수, 기뢰의 소해에 의한 안전성, 잠수함의 활동 등을 고려하여 마이즈루 항으로 입항하기로 결정했다고 서술되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